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보(李德甫)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18514
  • 전몰일자 : 19510527

공훈사항

이덕보 하사는 경상남도 창원군 북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10월 18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공병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 중이었고, 제3사단은 원산 일대에서 경계와 작전소탕작전 중이었던 상황이었다. 이후 사단은 동해가도를 따라 북진하여 11월 30일 부령까지 진출,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이날 상급부대 명령에 따라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사단은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1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사단은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후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2월 21일부터 킬러작전을,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을 전개했고, 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3월 말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사단은 4월 중순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사단 정면에는 북한군 제6사단이 투입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4일 동안 치열한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기어이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적의 포위망을 뚫고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사단은 제3군단에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하사는 5월 27일 분대원을 이끌고 보급로 보수작업 중에 적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보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6판-2면-18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7-ㄲ-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