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만(李德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402688
  • 전몰일자 : 19521020

공훈사항

이덕만 이병은 1927년 2월 16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서구 부민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5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본부로 배치되었다가 카투사(KATUSA)로 분류되어 미 제7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덕만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인 6월 중순, 미 제7사단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중서부전선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당시 중동부전선에는 국군 제2군단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1952년 7월부터 12월까지 중공군 4개 군단(제38·제15·제12·제68군단)과 전초진지 및 방어선 상의 주요 고지를 서로 점령하기 위해 고지쟁탈전을 수행했다. 또한 기간 중 군단 좌측의 국군 제9사단이 10월 6일부터 백마고지에서 혈전을 벌였다.
중공군은 1952년 여름부터 공격작전을 시도하여 수차례에 걸쳐 공격했으며, 가을로 접어들어서는 전 전선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아군 진지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첫 번째로 미 제9군단의 서측방에 위치한 백마고지에 대한 공격을 실시했다. 이에 유엔군사령부도 반격하기로 결심했다.
미 제9군단은 10월 14일 새벽 5시에 저격능선과 삼각고지를 탈취하기 위한 ‘쇼다운작전’을 개시했다. 군단 예하 16개 포병 280문의 야포가 일제히 포문을 열었으며, 유엔 전폭기의 항공지원이 개시되었다. 이후 이덕만 이병이 소속된 미 제7사단에서 1개 연대가 삼각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미 제32연대가 먼저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이덕만 이병이 소속된 제17연대가 10월 16일에 재차 공격하여 정상인 598고지 일대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적들의 필사적인 역습으로 10월 19일 이를 상실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0월 20일에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만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4판-6면-2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ㄲ-1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