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룡(이덕룡)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27885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이덕룡 하사는 1931년 12월 10일에 경상북도에서 출생하였다.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0년 9월 17일에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아군이 1950년 10월 19일에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는 상황에서 10월 25일, 제9사단이 제28·제29·제30연대를 예하부대로 두고 서울에서 창설되었다.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에 투입되어 대둔산 지구 및 충남지역 일대를 담당하였다.
그 후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제9사단은 강원 정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
이후 북한군 제10사단이 두타산(1,361고지) 북쪽의 삼화리를 경유해 북상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하였고, 이에 따라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3월 12일에 송계리에 투입되었다.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였고 제9사단은 4월 중순에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후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에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9사단은 인제 남방의 598고지를 점령하였으나 이 무렵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 징후가 포착되어 제9사단은 방어 태세로 전환하였고, 5월 16일에 중공군은 현리 일대의 국군에 대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되며 이 하사는 속사리 부근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19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룡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ㅋ-01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