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길(李德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22339
  • 전몰일자 : 19510911

공훈사항

이덕길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북진하던 시기에, 조국통일의 선봉이 되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0월경 수도사단에 입대하여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한·중 국경선을 향해 북진하고 있었고, 수도사단은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한 후 계속 동북방으로 진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18연대는 계속 북진하여 10월 28일까지 개마고원 일대에 다다랐다. 이후 연대는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하고, 30일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이날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유엔군의 리퍼작전(3월) 때는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에서 적과 격전을 치렀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강원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되어 연대는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적의 포위망을 뚫고 방태산-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5월 말 양양 서쪽의 마산리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일병은 9월 11일 고성 일대에서 수색정찰작전 중 적 정찰대와 조우하여 전투 중에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길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1547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38묘역-4판-1865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7-ㅋ-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