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기(李德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1411
  • 전몰일자 : 19501029

공훈사항

이덕기 일병은 경기도 평택시 송탄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2월경에 입대 후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950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연대의 제2대대가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이 일병은 전후 행정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제28연대로 정리되었다.
제9사단은 7월 6일부터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 방면으로 지연전을 펼쳤다. 그러나 제8사단의 뒤를 따라 북한군 제12사단이 계속 공격해오자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 안동전투에 투입되어 제8사단의 철수를 엄호하며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8월 2일에 낙동강 남쪽 반변천 일대에서 북한군과 교전 후 길안에서 방어선을 편성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5일에 8월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진지 측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12사단과 전투를 이어가며 의성으로 철수했다.
이에 의성-영덕 사이에 큰 전선의 공백이 발생했고, 북한군 제12사단은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남하해 8월 9일에 기계를 점령하고 11일 포항을 점령했다.
연대는 1950년 8월 13일에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에 투입되어 9월 4일까지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기계를 탈환하고 적을 격멸했다. 이어서 9월 9일까지 호명리전투에서 진지를 사수함으로써 북한군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연대는 9월 16일에 반격으로 전환하여 안강-청송-평창-서림 방면으로 진격했다. 1950년 10월 2일 38도선을 넘어 강릉-간성-통천-회양-신고산-원산 방면으로 북진했고, 10월 10일에 원산을 탈환하여 덕원-마전리-영흥 방면으로 진격했다.
연대는 10월 17일에 흥남을 점령하고 북청-풍산 방면으로 진격하였으나 이 일병은 1950년 10월 29일에 북청군과 풍산군의 분계선인 후치령 전투에서 용감하게 앞장서서 돌격을 감행하다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7-ㅁ-02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