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훈(이대훈)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41654
  • 전몰일자 : 19520417

공훈사항

이대훈 하사는 1926년 7월 22일에 경상북도 청도군 교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38도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2월 중순, 경기도 동두천의 제6사단으로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수색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을 사단에 보고하거나, 적 지휘소 및 탄약고 등을 타격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대훈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중순, 제6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시작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철수하여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제6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즉각 반격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5월 25일부터 가평-춘천 사이의 산악지대인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구만리(화천)발전소까지 진출했다.
이후 제6사단은 6월 5일부터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 적근산-백암산 선까지 확보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얼마 후 제6사단은 유엔군의 작전지침에 의거 백암산 방어진지 전방에 위치한 819고지-462고지를 8월 31일에 탈취했고, 금성천을 감제하는 교암산(770고지)을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대훈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서 적에 관한 정보수집 활동을 했다.
제6사단은 1952년 1월 10일에 미 제9군단으로부터 배속 해제되어 양구로 이동했고, 이곳에서 사단은 야외기동훈련에 집중했다. 그리고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를 인수하여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대훈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주로 작전지역 내에서 수색작전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던 중 수색소대는 4월 17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훈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6판-6면-22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ㄹ-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