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현(李大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245629
  • 전몰일자 : 19530718

공훈사항

이대현 일병은 1932년 1월 20일에 경상남도 하동군 양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4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45사단 제18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대현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미 제45사단은 미 제1군단 소속으로 연천 북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단은 6·25전쟁 발발 당시 오클라호마 주방위군 임무를 수행하던 부대였다. 1950년 9월 1일 동원 소집되어 1951년 4월 일본으로 이동한 뒤 이듬해 1952년 2월 미 제1기병사단과 임무를 교대하면서 6·25전쟁에 참전했다. 사단은 주방위군에서 동원된 사단이지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충분한 훈련과 장비, 편제를 유지했기 때문에 참전 초기부터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했다.
이대현 일병이 전입하기 전, 미 제45사단 장병들은 1952년 6월 6일부터 카운터 작전을 시작하여 중공군이 점령하고 있던 14개의 전초진지를 탈취했다. 이 고지들이 후에 ‘불모고지(OldBaldy)’, ‘포크찹고지(PorKchopHill)’라고 명명되었다. 이 작전의 승리로 사단장은 공세를 고지의 동북쪽 계곡 건너편의 에리고지(Eerie)까지 확대했다. 이후 중공군은 되찾기 위해 6월 말까지 20차례 이상 역습을 했으나, 사단은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사단은 7월 17일에 미 제2사단에 진지를 인계하고 양구 및 인제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었다.
미 제45사단은 1953년 초 진지를 강화하며 탐색과 소부대전투만을 반복하는 가운데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공산군은 6월로 접어들면서 휴전협상이 타결될 기미가 보이자 주로 국군 사단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공세를 실시하여 아 방어지역 일부를 점령했다. 사단은 적의 침략에 대비 공세적인 수색활동을 강화했다. 이대현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7월 18일에 진전지역에서 수색작전을 하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1-ㄹ-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