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하(李大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1828
  • 전몰일자 : 19510627

공훈사항

이대하 일병은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1년 1월 19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통신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제천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평창군 하진부리, 유천리 일대를 점령하고 계속 공격하여 3월 말 38도선 상의 현리-하림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사단은 공격을 개시하여 4월 중순경에는 한계리, 가리봉, 한석산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사단 정면에는 북한군 제6사단이 투입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4일 동안 치열한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기어이 가리봉과 한석산 일대를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현리로 물러섰고, 17일 사단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적의 끈질긴 추격을 받아 수많은 장병들이 전사한 가운데 5월 20일 하진부리까지 철수해서야 겨우 병력을 수습할 수 있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사단은 제3군단에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일병은 6월 27일 통신 점검을 나갔다가 적 정찰대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6판-7면-15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7-ㄴ-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