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진(李大振)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9714
  • 전몰일자 : 19530703

공훈사항

이대진 일병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일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1950년 8월 하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본 직할부대인 제303공작대로 배치되었다.
이대진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1950년 10월 1일 부로 38도선을 통과하여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303공작대는 아군의 북진작전 시에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 주요요인을 납치 또는 사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총공세를 실시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북진작전이 좌절되어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했고, 제303공작대는 제6사단에 통합되면서 전투임무를 수행했다. 이에 이대진 일병은 부대원들과 함께 12월 11일 38도선 상의 전곡 일대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연천-의정부 축선을 방어에 투입되었다.
제6사단은 12월 31일 야간에 대규모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맞아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정면의 적은 격퇴했지만, 방어진지 측후방으로 침투한 적이 후방을 차단함에 따라 방어진지로부터 철수했다. 반면 중공군은 대병력을 동원하여 서울을 목표로 급속하게 진출하여, 1951년 1월 3일에 의정부를 점령하고 1월 4일 서울을 점령하면서 한강 이남으로 진출을 기도했다.
사단 장병들은 덕정리-의정부-창동을 거쳐 1월 2일에 경기도 광주로 이동하여 한강 남안 일대를 점령했다. 그 후 제303공작대원들은 한강 남안 일대의 방어진지에서 전투력복원을 한 후 북한군 잔적을 소탕하는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했다. 이대진 일병과 부대원들은 아군 후방지역에서 보급로 차단 및 주요시설 습격 등 후방지역 교란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북한군 잔적들을 탐색 및 격멸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던 중 1953년에 접어들어 중공군 7월 공세 시 강원도 화천 북쪽 교암산 부근 전투에서 종심지역인 강원도 홍천 일대로 소대원들과 함께 수색정찰을 나갔다가, 7월 3일에 적 게릴라를 발견하고 소탕작전을 실시하여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대진 일병은 게릴라와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진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1판-5면-07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ㅁ-09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전사자 명부에 소속이 제303공병대로 기록되어 있으나,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부대이므로 오류로 추정하여 제303공작대로 조정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