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종(李大鍾)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107103
  • 전몰일자 : 19501018

공훈사항

이대종 일등중사는 1929년 6월 6일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8년 12월 28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이대종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금강선과 대평리 선이 위태롭고 또 청주 국사봉 방어선이 언제 돌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1950년 7월 17일 보은을 거쳐 20일 안동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북한군의 8월 공세 일환으로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 북쪽에서 공격해 오자, 그는 8월 1일 안동 북쪽에서 국군 제8사단을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낙동강 남쪽인 반변천 일대에 북한군과 교전하면서 8월 3일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그때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의성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그와 장병들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기계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대종 일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이후 계속된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방어전을 벌였다. 이 일등중사와 장병들은 북한군의 9월 공세의 일환으로 북한군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공격해 오자, 수도사단은 9월 4일 안강을 포기하고 경주 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0월 1~9일 사이에 양양-간성-양구-화천-회양-신고산-안변을 거치면서 북한군을 소탕해 10일 원산을 점령하였다. 이후 계속 함북지역인 고원-흥남 방향으로 진격하여 퇴각하는 북한군을 추격해 사살하였다. 이대종 일등중사는 통일조국을 수립한다는 부푼 꿈을 안고 진격을 계속하였으나 1950년 10월 18일 고원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종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7판-6면-02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3-ㅎ-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