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일(李大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3976
  • 전몰일자 : 19501001

공훈사항

이대일 일병은 경상북도 문경시 점촌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4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무렵, 제8사단은 1950년 4월 22일까지 시행된 공비토벌작전을 통해 북한 유격대와 공비들을 전부 소탕하는 성과를 거둔 후 강원도 강릉군 주문진에 주둔하며 강원도 동해안 일대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북한군 제5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엄청난 포병 화력의 지원을 받으며 7번 도로 축선에 투입하여 주문진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에 강릉에 주둔해 있던 제8사단은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연전을 펼쳐 강릉을 3일동안이나 방어했다.
이후 북한군 제12사단은 1950년 8월 1일 안동 동측으로 우회하여 안동을 습격할 계획으로 안동읍에 집결하였다. 이에 제8사단 장병들은 제50포병대대의 지원으로 안동 북쪽의 천등산과 연곡동 일대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의 진격을 저지했지만, 북한군의 포위에 1950년 8월 3일 사단을 우두리로 이동하였다. 국군은 1950년 8월 10일 북한군 제7사단이 기계 방면으로 이동했다는 제보에 격퇴를 위해 전투를 벌였다. 제8사단은 도평 337고지, 361고지에서 침입하는 적을 치열한 접전 끝에 저지하였고 수석봉에 진출하여 방어태세에 돌입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그 일대에 유격대를 배치해 변수에 대비하고 방어태세를 강화하였다.
경상북도 영천군의 보현산 부근의 전투는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를 위협하였고 제8사단이 위치한 영천 북방에 또한, 강압을 가했다. 곧이어 제8사단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입암-영천 부근 도로를 봉쇄했지만, 북한군의 대규모 병력이 공격하여 방어진지가 돌파되었다. 하지만, 제8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며 영천군을 재탈환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9월 20일부터 국군의 총반격 작전에 합류했다. 북한군은 국군의 군사력에 대응하지 못하고 구산동 전투에서 참패를 거듭하였다. 제8사단은 포위, 압박하며 공격하였고 이에 제8사단은 패주하는 적군을 추격해 전멸시키는 전과를 세웠다. 그러나 이 일병은 안타깝게도 1950년 10월 1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일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ㅂ-08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