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원(李大元)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7901356
  • 전몰일자 : 19500902

공훈사항

이대원 하사는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하사는 1950년 1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속한 제8사단은 강원도 인제군으로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서 38도선 지역의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이른 새벽 38도선을 지나 국군의 기지를 공격하며 기습남침을 감행하였다. 당시 제8사단은 방어와 동시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역습을 시도해 적에게 피해를 줬으나 적의 병력과 화력이 우세해 강릉을 상실하고 낙동강 지역까지 지연전을 펼쳤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8월 1일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으로 집결함을 확인하고 제50포병대대의 지원을 받아 안동 북쪽의 천등산과 연곡동 일대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했다. 후에 북한군은 입암에 도착하여 기계 방면으로 향할 목적으로 아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도평에는 아군이 없었다. 북한군은 이 사실을 깨닫고 진격을 시작했고 제8사단은 1950년 8월 10일 북한군 제7사단이 기계 방면으로 이동했다는 제보에 격퇴를 위해 전투를 벌였다.
제8사단은 도평 337고지, 361고지에서 침입하는 적을 치열한 접전 끝에 저지하였고 수석봉에 진출하여 방어태세에 돌입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그 일대에 유격대를 배치함으로써 방어태세를 강화하였다. 하지만 북한군은 1950년 8월 19일 용마산 방면으로 끊임없이 침투하였고, 제8사단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교전했다. 결국 제8사단은 1950년 8월 22일 515고지와 함께 633고지를 점령하고 공격을 개시하여 북한군을 패주 시켰다. 북한군은 569고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국군의 방어진지를 기습하였다. 그러나 제8사단은 수색대를 파견하여 정찰하며 북한군의 역습을 격퇴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5일 보현산 북방 도처에 침입을 개시하였다. 제8사단 각 연대를 비롯하여 아군 또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제8사단은 항공기로 북한군의 주저항선 및 방어진지를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며 분산시켰다. 제8사단은 박격포 지원으로 북한군의 방어진지를 분쇄하고 566고지, 500고지를 점령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1950년 9월 2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원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6판-1면-08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ㅅ-00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