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근(李德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K1122503
  • 전몰일자 : 19501130

공훈사항

이대우 이병은 1933년 4월 24일에 경상남도 김해군 진례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3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미 제2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대우 이병이 부대로 전입 왔을 때인 10월 중순, 미 제2사단은 전주-논산 일대에 주둔하며 덕유산 및 지리산 일대로 숨어 들어간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한편 미 제8군은 10월 초순에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실시하여 19일에는 평양을 탈환하고, 24일에는 청천강 선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를 실시하였으나, 적유령산맥 일대에 은폐해 있던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이대우 이병이 소속된 미 제2사단은 11월 2일에 전북 지역의 게릴라 소탕임무를 국군 제11사단에 인계하고, 개천 및 군우리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당시 유엔군은 적정(중공군의 규모와 의도 등)을 모른 채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를 실시하였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공격이 저지되었다. 미 제2사단 장병들은 11월 29일에 군우리 일대에서 중공군 제38·제40군단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퇴로가 차단되었다. 이후 사단은 적의 차단선을 돌파하기 위해 군우리-순천간 협곡지대인 일명 '태형의 계곡'을 통과할 때에 큰 피해를 받았다. 그는 11월 30일 전투에서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우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1판-3면-03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ㅁ-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