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용(이대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200142
  • 전몰일자 : 19510207

공훈사항

이대용 일병은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50년 7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 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대용 일병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8월 초부터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쌍방은 가산을 탈환하고자 9월 중순까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방어선을 지켜냈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충북 보은지구에 잔류하여 잔적을 소탕하던 중 10월 7일 이동을 개시하여 안성-서울을 거쳐 10월 10일에는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로 진출하였다. 사단은 10월 30일 온정을 경유하여 초산으로 공격하여 11월 1일 오후까지 공방전을 펼친 후 입석리로 이동하였다. 이후 11월 28일 태천 외곽까지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공격에 밀려 박천 북쪽의 중막동-용산동 선을 점령하였고, 다음날(29일) 박천-용산동 일대를 고수하기 위하여 총력을 다 하였다.
이대용 일병은 사단 장병들과 함께 12월 7일 사리원에서 남천으로 이동하여 구월산 일대에서 활동 중인 1개 대대 규모의 패잔병을 소탕하였으며 이후에도 위천리, 구화리 일대의 축차적인 지연 진지를 점령하여 지역 내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중공군은 12월 31일 도감포 지역으로 집중포격을 개시하였다. 밤새도록 돌파구 확대를 기도하는 중공군을 맞아 총력전을 펼쳤으나 도하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51년 1월 2일 한강 남쪽으로 철수하기 시작한 이 일병과 사단 병력은 2월에는 한강 남쪽의 영등포-노량진-동작동을 연하는 선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대용 일병은 1951년 2월 7일 한강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용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55묘역-4판-363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ㅅ-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