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옥(李大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304119
  • 전몰일자 : 19510531

공훈사항

이대옥 이등상사는 1926년 2월 22일에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광복 후 사회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8년 4월 25일 전라북도 전주에 위치한 제2여단 제3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했다. 연대는 5월 1일부로 제5여단으로 예속 변경되어 여·순 10·19사건 및 제주도 4·3사건 등에 투입되었다. 제5여단은 1949년 5월 12일부로 제5사단(제3, 15, 20연대)으로 승격되었으나, 제3연대가 1950년 1월 25일부로 제7사단으로 예속 변경되면서 이대옥 이등상사는 제15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연대는 전주에 주둔하면서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5사단은 2개 연대(제15, 20)로 초기전투에 참전하였으나, 전쟁초기에 입은 손실로 7월 5일 국군의 부대를 재편성할 때에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 대구에서 제27·35·36연대를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이대옥 이등상사는 사단이 해체되어 타부대에서 전투를 수행하다가 재창설되면서 제35연대로 재배치되었다.
당시 제5사단은 국군 및 유엔군의 북진작전으로 영남지역 후방지역작전을 11월 22일까지 완수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엄호하기 위해 사단은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투입되어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개시하여 아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사단은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가평-횡성-여주-영주 일대로 철수하였으며,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을 격멸했다. 사단은 다시 전방에 투입되어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공격을 개시하였으나,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2월 공세)을 받고 철수하여 제천 북쪽 주천리에 新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횡성 일대의 봉복산-태기산 전투(3월), 인제 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냈다. 이후 사단은 4월 10일에 인제 방면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4월 19일 캔자스선을 점령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7일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한석산 좌측에서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홍천-인제 도로를 확보하고, 5월 하순까지 강원도 인제 일대 논리 북쪽의 매봉-상수내리를 잇는 선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대옥 이등상사는 복무기간 중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5월 31일 상수내리 지역에서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면서 중공군 침투부대와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옥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7359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3-ㄴ-00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