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영(李大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349075
  • 전몰일자 : 19530528

공훈사항

이대영 일병은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에서 1931년 4월 1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2년 9월 3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 수료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하며 수색 정찰을 강화하였다. 그러던 도중 제8사단 장병들은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미 해군,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 1952년 9월 21~22일간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당시 수도고지 전선은 1952년 10월 이후 소강상태를 보였다. 제21연대는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1953년 초순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이에 제21연대 장병들은 전초진지 경계를 엄중히 하는 동시에 수색 정찰 활동을 증가시키고 예비대를 전방으로 이동시켰다. 제21연대의 예측처럼 중공군은 1953년 5월 13일 막강한 화력으로 제8사단의 주저항선 및 후방에 걸쳐 포격을 가했고 피아간에 수류탄전과 치열한 사격전이 전개되었다.
북한군의 지형조건은 고지를 감제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에 있었다. 제8사단은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1953년 초순부터 간파하고 있었고 전초진지 경계를 엄중히 하는 동시에 수색 정찰 활동을 증가시키고 예비대를 전방으로 이동시켰다. 제8사단은 적군의 측방 화력과 일제사격으로 다수의 부상자를 냈고 594고지와 647고지가 빼앗겼지만 지형적 악조건과 병력의 손실을 무릅쓰고 공격을 감행하였다.
북한군은 1953년 5월 13일 제8사단의 주저항선 및 후방에 걸쳐 포격을 가했으며 1953년 5월 27일에 제8사단 연대 512고지와 647고지에 공격을 감행하였다. 제8사단은 연막탄과 함께 전차 2대가 출현하였을 때 수류탄전과 치열한 사격전으로 북한군을 격퇴하고 패주 시켰다. 제8사단은 북한군의 치열한 포격으로 통신망이 두절되었다.
다음날 병력을 증강하여 재침입하는 적군과 전투하였지만 647고지와 594고지를 빼앗겼고 국군 진내까지 침입하여 피아간에 치열한 교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증강되는 적으로 인해 제8사단은 철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3년 5월 28일 수도고지 능선의 진지를 사수하다 전투 중 총탄에 맞아 금화에서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영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8판-8면-14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4-ㄹ-04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