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영(李大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198
  • 전몰일자 : 19501230

공훈사항

이대영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 월봉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제7사단은 8월 20일 제3·5·8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제7사단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적을 추격하고 있었다.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사단은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로 집결 후, 다음 날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11월 3일 사단은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사단 장병들은 7일까지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고 비호산을 지켜냈다. 사단이 비호산을 확보함으로써 청천강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중공군과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승리함으로써 중공군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1월 14일 사단은 덕천으로 진격했고,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사단은 26일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사단 지휘소가 습격당해 지휘통제 능력을 상실한 채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연대는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부대 기동이 빈번한 상황에서 적시적으로 병기 정비와 보충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 일병은 최선을 다하며 임무를 완수해 왔다. 하지만 그는 12월 30일 방어준비 중인 예하 연대에 병기 정비차 이동하다가 적의 습격을 받고 교전 중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5면-22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1-ㄲ-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