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영(李大寧)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5800317
  • 전몰일자 : 19501101

공훈사항

이대영 이등중사는 서울 서대문 봉원동에서 1930년 10월 24일에 출생하였다. 이 이등중사는 1949년 7월 1일에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그가 입대할 당시 제8사단 제10연대는 강원도 강릉군 주문진에 주둔하며 강원도 동해안 일대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제8사단 제10연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에 맞섰지만 적의 끊임없는 공세에 대관령과 죽령을 넘어 소백산맥을 따라 경상북도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하였다. 북한군의 공세로 낙동강 지역까지 철수해 장병들은 낙동강 방어선의 주요 전투에 참가했으며, 8월 상순 동안 의성지구 전투를 통해 의성군 일대의 북한군 제8사단을 고립시켰다.
이후 제10연대는 영천군을 방어하게 되었다. 영천군은 제1군단과 제2군단을 연결하는 지점으로써 대구와 포항을 잇는 요충지이다. 만일 영천 방면의 방어선이 무너진다면 낙동강 방어선의 종심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0연대는 경상북도 영천군 자양면 기룡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예상대로 북한군은 제15사단을 비롯하여 전차 12대와 각종 포 166문의 지원을 받으며 영천군을 공격했다.
제10연대 장병들은 9월 초 북한군의 막강한 화력에 직면하여 영천 읍내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영천 읍내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게 되었다. 곧이어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의 증원부대가 도착하여 전 국군이 북한군 제15사단을 포위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특히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이어 낙동강에서 반격 작전을 실시했다. 제10연대 장병들은 1950년 9월 8일 영천군을 탈환했고, 9월 10일에는 영천군을 넘어 의성군 방면으로 반격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10연대 장병들은 10월 하순에 묘향산맥을 따라 평안북도 희천군까지 이르렀다. 이 시점에 중공군의 침략을 받았다. 제8사단 10연대는 덕천에서 적의 좌측 부분을 경계하다가 국군 제7사단이 들어오자 진지를 교대한 후 영원으로 직행하고, 제16연대는 맹산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이등중사는 1950년 11월 1일 북한군과의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영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5판-2면-05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9-ㅊ-04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