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영(李大永)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20116

공훈사항

이대영 순경은 1930년 10월 2일 황해도 사리원 승주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동부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전남부속병원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동부경찰은 광주-담양, 광주-순창, 광주-화순을 잇는 주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3일 광주에 적 보병 500-600명이 야포 3문과 함께 진입하였으며 1개 연대규모가 그들을 후속하고 있었다. 이에 동부경찰을 포함한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은 화순 남쪽 산악지대에 저지진지를 구축하고 도로를 파괴하는 등 적의 진출에 대한 거부작전을 전개했다.
비상경비총사령부는 7월 31일 진주에서 경남경찰, 전남·전북경찰 혼성병력 4천여 명으로 전투부대를 재편성했고, 경찰부대는 미 제25사단 및 한국 해병대와 합동작전을 전개했다. 8월부터 9월까지 동부경찰은 경찰부대에 편성되어 고성·창원·함안·진동에서 북한군 제6·7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하면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전선이 북상하면서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동부경찰서는 10월 3일 동부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 주요 시설 경비, 오열 색출,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였으며, 이 순경은 제1-제2차 공비섬멸 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그 후 이 순경은 서남지구 전투사령부 전남경찰대대에 소속되어 제1기(1951.12.1.-12.14), 제2기(1951.12.16.-1952.1.4.)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어서 광주에서 제3기(1952.1.5.-)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던 중 1952년 1월 16일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영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00-ㄱ-01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