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시(李大施)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2388
  • 전몰일자 : 19501205

공훈사항

이대시 일병은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초순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흥해 남쪽 고지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9월 5일 새벽 적은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3시간여에 걸쳐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총반격 태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9월 23일 사단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도 추격작전에 돌입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파죽지세로 나아가 장사동-평해-울진-삼척-강릉(30일)을 적의 큰 저항 없이 탈환하면서, 일일 평균 17.3km의 경이적인 속도로 진격했다. 연대는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했고, 5일 치열한 격전 끝에 적을 격멸하고 강원도 장전을 점령한 후, 6일 통천을 점령했다. 연대는 적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계속 진격하여 9일 남대천 일대에 도착하여 원산 공격 준비를 했다.
10월 10일 새벽 공격을 개시한 연대는 적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한 후 시내의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사단은 원산 외곽선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연대는 원산비행장과 고저-안변지역의 경계를 맡았다. 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안전한 원산 상륙을 보장하기 위해 원산 외곽선을 확보하고 잔적을 소탕했다.
10월 26일 원산에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에 경계임무를 인계한 연대는 11월 4일 신북청으로 북상했다. 11일 연대는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연대의 선두부대가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이날 하달된 미 제10군단장의 철수명령에 따라 성진-흥남으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진격하다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2월 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8판-3면-25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ㅌ-00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