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순(李大淳)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9200548
  • 전몰일자 : 19500813

공훈사항

이대순 이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5일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소총 조작법을 익힌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이대순 이병은 진천 북단 백곡천에 투입되었다. 진천-청주 축선은 중서부 지역에서 대전 또는 보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중요한 접근로이며, 이 축선에서의 작전은 서측의 경부축선상의 작전에도 큰 영향을 주는 중요 축선이었다. 이 이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7월 8일 아침 적 제2사단의 전차를 동반한 압도적인 공격을 받아 적을 저지하지 못하고 잣고개로 물러났으며, 진천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공격부대는 일제히 적의 탄막지대를 돌파하면서 부대정비 중이던 적을 공격하였고, 마침내 원래 사단의 주저항선인 봉화산, 문안산을 회복하였다.
이후 이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청주로 철수하라는 명령에 따라 10일 저녁 청주의 미호천 남안으로 철수하여 새로운 진지를 급편성하였다. 사단의 철수를 뒤늦게 알아차린 적 제2사단은 양천산을 경유하여 남진한 후 11일 아침 무렵 미호천 북방까지 진출하였다. 미호천 교량을 폭파한 후 진지보강에 주력하고 있던 수도사단은 적의 선두부대가 접근하는 즉시 야포로써 제압하고 항공지원을 요청하여 적 집결지를 강타하고, 다음날에는 군단 포병의 지원을 받아 적의 예상집결지를 집중사격하는 등 적의 공격을 철저히 분쇄하였다. 이후 이대순 이병과 장병들은 13일에 미호천에서 접적이탈을 단행하여 청주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이대순 이병과 연대병력은 낙동강 남쪽인 반변천 일대에 북한군과 교전하면서 8월 3일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대순 이병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안타깝게도 1950년 8월 13일 의성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순 이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1483 육)을 추서하고 유해(48묘역-2판-90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2-ㅌ-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