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수(李代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502971
  • 전몰일자 : 19510613

공훈사항

이대수 일등상사는 1928년 5월 1일에 경상남도 고성군 칠성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북한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울 때인 1948년 4월 15일에 부산에 주둔한 제5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10월 28일부로 경기도 시흥에서 창설된 제17연대에 창설 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이대수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이후 1949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으로 이동했다가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6월 26일 아침에 육본 명령에 의거 해군에서 지원한 LST로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7월 17일에 상주 일대 화령장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을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낙동강벙어선에서는 기계-안강 지역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하고 9월 13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이후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하여 9월 25일에 신사리에서 한강을 도하공격하여 서울의 동쪽을 탈환했다.
육군이 11월 7일에 서울에서 제2사단을 재창설할 때, 이대수 일등상사는 제32연대 창설 요원으로 차출되었다. 이후 제32연대와 함께 의정부 일대로 이동하여 후방지역을 교란하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한편 유엔군의 주력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할 때, 제2사단도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방어선을 점령했다. 이어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 시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였고, 1951년 2월 13일에 안동 부근으로 이동하여 공비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제2사단은 1951년 4월 28일에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청평 일대의 전방작전지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마석-용문산-홍천-하진부리-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시키고 5월 20일을 기해 즉각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제2사단은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한 후 5월 24일부터 본격적인 반격으로 사창리-다목리-김화에 이르는 계곡 통로의 우측 능선을 따라 공격을 했다. 이대수 일등상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예비로서 전방연대를 후속하다가 다목리 일대에서 제31연대를 초월공격하여 김화 동쪽의 육단리를 향해 진격하여 6월 12일에는 적근산-육단리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치료 중 6월 13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수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8709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ㄲ-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