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성(李大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6384
  • 전몰일자 : 19510428

공훈사항

이대성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1월 하순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 중이었고, 제7사단도 철수 중인 상황이었다. 연대는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철수하여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의 명에 의거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동북방의 봉래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3군단은 제3사단 제2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하여 영월을 탈환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만경대산과 영월 일대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16일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연대는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하여 강원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연대는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지역 내 잔적을 소탕하면서 속사리-창촌-현리 방향으로 계속 진격하여 3월 하순에는 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초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신풍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끝까지 진지를 지키며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4월 2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유해(11묘역-7판-54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ㅂ-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