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석(李大錫)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21290
  • 전몰일자 : 19530129

공훈사항

이대석 하사는 1930년 2월 27일에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現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지속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진행되던 1952년 7월 1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제50연대로 배치되었다. 연대는 6월 13일부로 강원도 양양에서 창설되어 후방지역 공비소탕 및 포로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한편, 1952년에 접어들면서 한국 정부는 휴전 후의 국방을 고려하여 육군의 규모를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마련하여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이 이에 응함에 따라 4월 28일 3개의 경장비 교육보충연대(제37, 38, 39연대)가 창설되었고, 6월 13일 다시 같은 성격의 3개 연대(제50, 51, 52연대)가 창설되었다.
이대석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제50교육보충연대는 창설된 후 증편과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영·호남지역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되었다. 호남지역에서 아군의 후방지역을 교란하던 공비들은 다시 병력을 수습하여 재편성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1952년 8월경 호남지역에는 대략 1,500여 명의 공비가 지리산, 덕유산, 회문산, 백아산 등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남 지역에는 230여 명의 공비가 응봉산, 일월산, 동대산, 신불산 등에서 세력을 규합하고 있었다.
호남지역에서는 1952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서남지구전투사령부가 주도하여 ‘블러드하운드 작전(Operation Blood Hound)’을 전개하여 잔존 공비들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제50교육보충연대는 서남지구전투사령부와 함께 호남지역 공비토벌작전을 전개했다. 이후 연대는 10월경 강원도 양양으로 복귀하여 제12사단 창설을 위한 부대개편 작업을 했다. 제12사단은 제53·55·56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가, 12월 10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7·51·52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했다. 이때 이대석 하사는 11월 8일부로 창설된 육군직할 제56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연대는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 및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대석 하사는 복무기간 중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1953년 1월 29일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수색정찰작전을 하던 중 적과 조우하여 교전하다가 적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석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7322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5묘역-7판-1198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ㄱ-03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