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석(李大錫)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21025
  • 전몰일자 : 19520828

공훈사항

이대석 하사는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4월 중순에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2사단 제31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대석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6월 12일에 제2사단은 적근산-육단리를 잇는 선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휴전협상은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가 주로 논의되고 있었다. 그러나 공산군은 휴전협상을 지체시키면서 군사력 증강에 더 노력했다. 이에 유엔군사령관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공산군에게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예하 부대에 공세적인 행동을 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은 8월 2일부터 8일까지 방어진지 전방의 745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다시 공격준비를 갖춘 다음에 9월 1일부터 3일까지 방어진지 전방의 745고지를 강력한 항공화력과 포병화력의 지원을 받아 공격하여 탈취했다. 그리고 사단은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한 김화-금성진격작전을 실시하여 김화로부터 14km 북쪽의 금성 일대 감제고지들을 탈취하여 전초기지를 설치했다. 이후 중공군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휴전협상에 임하면서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2사단은 1952년으로 접어들면서 몇 번의 부대 이동을 거쳐 6월 30일에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를 연결하는 주저항선에 배치되었다. 이후 방어진지 보강 공사와 적 침투활동을 거부하기 위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던 중 이대석 하사가 소속된 소대는 8월 28일에 작전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루어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5판-4면-0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ㄷ-02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