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석(李大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5878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대석 일병은 충청북도 진천군 달송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음에도 정치 및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12월 중순, 강원도 원주의 제6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춘천에 주둔하고 있던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제7연대 장병들은 화천에서 춘천에 이르는 도로상에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대전차 예비진지 3개를 구축하고, 중대마다 2∼3개소의 통나무로 만든 유개호를 마련하고 호(壕)간에는 철조망을 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그리고 방어에 유리한 소양강 변과 그 북쪽 춘천 분지를 감제할 수 있는 164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전쟁 발발 1개월 전인 5월 하순에 공사를 마쳤다. 이처럼 제6사단은 비교적 다른 사단보다 방어준비태세를 철저히 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면적인 남침을 했을 때, 이대석 일병이 소속된 통신대는 곧바로 전방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에 집중하여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쳐들어왔다. 그는 통신병으로서 사단과 연대 간의 통신망을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이대석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 장병들은 제7연대의 방어체계가 무너지면서 더는 통신망 유지는 불가했다. 이에 통신병들은 제7연대 장병들과 함께 직접 전투에 참가했다. 제7연대는 대전차 특공조를 구성하여 적 자주포를 파괴하고,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 부대의 진출을 지연했다. 그러나 북한군 제2사단의 병력 및 무기와 비교했을 때 전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전쟁 첫날인 6월 25일에 춘천 북방의 164고지 일대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4판-3면-02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7-ㅅ-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