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석(李大碩)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604000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이대석 이등중사는 경상남도 진양군 정촌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2월 1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대석 이등중사는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 이등중사를 비롯한 연대병력은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대석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0월 9일에 고랑포를 출발하여 접적 없이 동북쪽으로 진격, 38도선 북쪽에 위치한 마전리를 점령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10월 23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한 후 24일 오전 10시 30분 전차 1개 소대가 용산동 후방으로부터 돌입하면서 북한군 전차를 격파하자, 남·북에서 협공을 받은 북한군은 패주하기 시작하였고 운산으로 진출하기 위한 중간목표인 영변과 용산동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어 10월 25일 아침 운산 공격이 개시되었다. 이대석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영변에서 구룡강 동측을 따라 공격하여 일부 경미한 북한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운산 시내로 돌입하였다. 이후 이 이등중사와 연대는 11월 20일 태천-구성-삭주-신의주로 진출하게 되었으며 24일에는 적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어 적은 27일을 전후하여 대령강 동쪽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양지동, 둔전동 일대에서 돌파를 기도하던 중공군을 격퇴한 후 용산동 일대로 철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대석 이등중사는 1950년 12월 1일 묘향산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석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2판-2면-0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ㄲ-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