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봉(이대봉)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6242
  • 전몰일자 : 19500717

공훈사항

이대봉 중위는 1926년 3월 11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호국간성이 되고자 육군사관학교 9기로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고 1950년 1월 14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5사단 제15연대 소대장으로 전속되었다.
이대봉 중위가 부대에 전속될 무렵은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었고, 후방지역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소요사태와 남파된 북한의 유격대에 의한 습격·파괴활동으로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제5사단은 6·25전쟁 발발 전까지 사단 사령부를 전라남도 광주에, 제15연대를 전주에, 제20연대를 광주 송정리에 두고 지리산 일대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5사단은 육군본부로부터 문산 방면을 담당하고 있던 제1사단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이대봉 중위가 소속된 제15연대 제3대대가 선견대로 전주역을 출발해 6월 25일 오후 5시에 용산역에 도착 직후 휴식도 없이 문산 지역에 투입되었으며, 제20연대 제3대대는 순천에서 서울로 출동해 6월 26일 문산 지역에 도착했다. 제1사단의 예비로 대기하던 제5사단의 2개 대대는 봉일천 방어선의 좌 전방에 배치되어 229고지-도내리 간 4km의 방어정면을 담당했다.
제15연대는 6월 27일 오전 10시 문산에서 남하하는 북한군 제6사단 예하의 2개 대대가 공격하는 것을 격퇴했다. 연대는 오후 5시까지 압도적인 적의 공격을 연속적으로 격퇴했으나 휴대한 탄약을 모두 소모하게 되자 봉일천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적이 제20연대 제3대대를 추격해 제1사단 제13연대 서측방으로 우회 침투하면서 격렬한 야간전투가 전개됐다. 제1사단과 배속된 제5사단 제15, 제20연대는 6월 28일까지 적을 저지하며 격전했으나 서울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 28일부터 29일에 걸쳐 한강 행주나루터에서 민간 선박을 활용해 철수했다. 한강을 도하 후 제1사단과 제15연대(-)는 김포 반도에 적이 상륙함에 따라 김포전투사령부로 설치되었다.
7월 1일 오전 제15연대 제1, 2대대는 오류동과 소사 간에 배치되었다. 마침내 북한군이 오후 1시경 공격을 개시하여 오류동 일대에서 피·아 일진일퇴의 격전이 벌어졌다. 이어서 연대는 안양 지역으로 철수했다. 이대봉 중위는 오류동 부근 전투에서 중대원을 지휘통제하며 경기도 부평 일대 방어진지를 공격하던 북한군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7월 2일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봉 중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33묘역-판–88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ㅈ-09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