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복(李大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15786
  • 전몰일자 : 19520627

공훈사항

이대복 이등중사는 경기도 광주군 광주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1년 4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1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대복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6월 중순, 제11사단은 강원도 양양 북방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거진-건봉령 선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쌍방은 더는 공격하지 않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고 공산군의 공격 의지를 꺾기 위해 공세행동을 하도록 각 부대에 명령했다.
제11사단은 8월 17일에 아군 방어진지를 감제하고 있는 향로봉 북방의 884고지를 탈취하기로 했다. 이대복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3연대는 8월 24일까지 계속된 공방전 끝에 884고지를 탈취했다. 이후 연대는 11월 17일에 수도사단으로부터 월비산 방어지역을 인수했다. 이날 북한군 제9사단은 빼앗겼던 월비산을 되찾기 위해 부대가 교대되는 취약시기를 놓치지 않고 11월 18일에 공격했다. 연대 장병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11월 24일에 빼앗기고 351고지로 철수했다.
이대복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1사단은 1952년 1월 중순에 작전지역을 제5사단에게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전념했다. 다시 1952년 3월 30일에 국군 제1군단에 재배속되어 건봉령 일대의 방어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을 통해 적의 침투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중대는 6월 27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복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5묘역-5판-120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ㅊ-09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