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길(李大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5600590
  • 전몰일자 : 19530530

공훈사항

이대길 이등상사는 1927년 4월 10일에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9년 5월 31일에 김포의 공병학교로 입소하여 공병에 관한 기초군사훈련을 실시한 후 제2사단 공병대로 배치되었고, 6·25전쟁 당시 창동 및 미아리 방어선에 투입되었다가 한강교가 폭파되어 철수하여 육군직할 공병부대로 전속되었다.
이대길 이등상사는 11월 7일 서울에서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 공병대 창설 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사단은 의정부 지휘소를 위치시키고 후방지역작전을 했다. 이후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가평을 거쳐 충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2월 13일에 안동 일대로 이동하여 후방지역 안정화 작전을 실시했고,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제2사단은 5월 16일부터 중공군의 5월 공세로 전진을 멈추고 방어로 전환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용문산-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0일을 기해 일제히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2사단 장병들은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상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6월 중순까지 육단리-적근산(1073고지)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논의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제2사단은 상급부대 지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공격하여 522고지-477고지-하진현까지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이 되면서 몇 번의 부대 이동을 거쳐 6월 30일에는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제2사단은 10월 14일에 김화 북쪽의 저격능선을 공격하여 탈취한 후 중공군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기고, 빼앗는 치열한 전투가 11월 24일까지 42일간 계속되었다. 중공군은 11월 25일부터 더는 저격능선을 공격하지 않았다.
제2사단은 12월 30일부로 미 제3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하여 철원 고대산 전방의 독서당리, 중강리, 하진명동 일대로 이동했다. 사단은 예하 3개 연대가 교대로 전방과 예비 근무를 하도록 했다. 이대길 이등상사가 소속된 공병대대는 장애물 설치와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5월 30일에 철조망 설치 훈련 중 적 침투조의 공격을 받고 즉각적인 반격을 하여 격멸했으나, 그는 전투 중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며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길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639 국)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ㅂ-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