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근(李大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501530
  • 전몰일자 : 19500802

공훈사항

이대근 일병은 경상북도 김천시 신음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1949년 9월경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이 일병은 1950년 3월 27일까지 향로봉, 밀양, 양산, 언양, 울산 일대의 공비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사단은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제22연대와 제23연대의 대전차포중대 및 2개의 중화기중대를 서울로 출동시키고, 부산의 제23연대만을 가지고 전투에 대비하게 되었다. 6월 27일 북한군이 강릉을 점령하고 제8사단이 제천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자, 동해안 축선은 제3사단의 전투정면이 되었다.
제23연대는 7월 1일 울진을 탈환했으나, 북한군 제766부대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지연전을 계속했고, 7월 13일 영해 북방의 고지군을 점령하여 적의 남진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연대는 19일 적 제5사단의 기습적인 배후 공격으로 영덕을 탈취당하고, 영덕 동남쪽(1km)의 181고지-207고지 능선으로 철수하여 급편방어에 들어갔다. 21일 유엔군 해·공군의 지원하에 역습을 가하여 영덕을 탈환하고 그 북방의 화림산과 207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러나 22일 적의 야습을 받고 다시 영덕 일대로 철수했다. 북한군은 7월 하순까지 포항 점령을 목표로 제5사단을 동해 가도로 계속 공격하게 하고, 제766부대를 울진에서 산악지역으로 우회 기동시켜 아군 제3사단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다. 하지만 제766부대는 7월 26일 제3사단에 배속된 독립기갑연대에 의해 진보 일대에서 저지당했다.
7월 24일 제22연대가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함에 따라 사단의 전투력이 크게 증강되었다. 이에 연대는 29일 제22연대와 함께 지·해·공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다시 공격을 개시했고, 영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백병전이 거듭되는 공방전을 펼친 끝에 8월 2일 마침내 영덕을 탈환 후 3일 활인산-매정동 선을 확보하여 방어에 임했다. 일련의 전투에서 이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8월 2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6판-2면-07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ㄴ-08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