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근(李大根)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23

공훈사항

이대근 경사는 1916년 5월 11일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치안본부 유엔경찰대 소속으로 재직 중 황해도 연백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주공부대는 7월 3일 한강을 도하하여 경부가도를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고, 7월 3일에는 17대의 전차를 앞세워 경인가도에 진출했다. 영등포를 비롯한 오류동의 아군 방어선이 무너져 서울경찰은 부대별로 수원으로 퇴각했다. 7월 4일 적이 전차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남진하여 수원을 점령하자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경기경찰 300명을 천안-수원 간 철도경비에, 서울경찰 500명을 천안지구에, 100명은 평택 주둔 미군부대에 파견하고, 7월 6일에는 서울·경기 경찰병력 589명을 조치원에 투입했다. 이후 이 경사는 미 제1기병사단에 배속되어 그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했다.
북한군의 계속적인 남진으로 전선이 남으로 이동하면서 군경부대와 유엔군은 지연전을 펼치며 후방으로 후퇴했다. 미 제1기병사단은 영동에서부터 지연전을 펼치며 7월 30일 칠곡에 도달하였고,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이곳에서 낙동강 방어작전을 수행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자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었다. 미 제1기병사단은 칠곡에서부터 북진을 하여 평안남도까지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12월 23일 연백군 호동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 경사는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사살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근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ㅋ-00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