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대균(이대균)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3801228
  • 전몰일자 : 19510102

공훈사항

이대균 이등중사는 출생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전인 1950년 3월경에 제5사단으로 현지 입대하여 사단 사령부로 배치되었다. 이대균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제5사단은 사단 사령부를 전라남도 광주에, 제15연대를 전라북도 전주에, 제20연대를 광주 송정리에 두고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6·25전쟁 초기에 제5사단은 제15, 20연대가 제1사단 장병들과 함께 문산 및 봉일천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으나, 전력의 차이로 인해 1950년 6월 28일에 한강을 건너 철수했다. 사단(-)는 의정부와 문산을 방어하던 제7사단과 제1사단이 철수하자, 27일부터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미아리 지역 저지선을 구축하여 방어하고 있다가 28일 한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당시 사단은 7월 초 국군 재편성 시에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에 대구에서 재창설되었으며, 이때 이대균 이등중사는 사단 통신대로 재배치되었다.
제5사단은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와 같이 사단은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면서 아군 6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면서 게릴라들을 소탕했고, 11월 27일부터 철의 삼각지대에서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12월 2일 잔적의 거점인 춘천을 목표로 공격하여 임무를 달성하고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이대균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2월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어 방어준비 중이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대규모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전방연대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사단의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등중사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대균 이등중사는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시 소대원과 함께 사단 사령부와 예하부대 통신망을 점검하다가 1월 2일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대균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7면-352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ㅂ-01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