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흥(李達興)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385302
  • 전몰일자 : 19510302

공훈사항

이달흥 이병은 함경남도 함흥군 풍호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달흥 이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기갑연대는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신정공세를 받았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도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군의 전반적인 전선 조정에 따라 남쪽으로 철수하여 1951년 1월 10일경에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2월 3일 대관령-구산리를 공격하게 되었다. 공격연대는 5일 구산리와 강릉을 목표로 포병화력의 엄호하에 총공세를 개시하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목표탈취를 못하고 다음 날 공격을 재개하여 2월 7일 강릉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다시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이 이병과 연대병력은 2월 25일 중공군의 저항이 경미하자 신속히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어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5일간이나 계속된 폭설로 인하여 대관령-횡계리-구산리 간의 도로가 차단됨으로써 공격이 지연되었고 3월 1일에 이르러서야 경강국도를 중심으로 현리-양양을 연하는 카이로선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이 무렵 험준한 태백산맥을 따라 북상한 중공군 패잔병들이 후방지역으로 접근하여 먼저 이들을 소탕하였다.
이 이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달흥 이병은 1951년 3월 2일 구석동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흥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1묘역-1판-9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ㅎ-05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