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호(李達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6539
  • 전몰일자 : 19510117

공훈사항

이달호 일병은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現 부산광역시 사상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및 세부 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하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공병대로 배치되었다.
이달호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북진을 계속하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철수한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5사단은 1950년 11월 22일부로 영남 지역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고 12월 2일 북한군 잔적의 거점인 춘천을 목표로 공격하여 임무를 달성하고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그 이후 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12월 5일경 전방지역인 38도선 상의 춘천 북방에 투입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철수하는 아군의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12월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 제35연대는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 그리고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에 배치하여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대규모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전방연대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사단의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하여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침투하여 위협하자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이후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반격으로 전환 전인 2월 초까지 방어편성을 하고 있었다. 이달호 일병은 제천 부근 방어진지에서 분대원과 함께 전방연대 장애물 설치를 지원 중 1951년 1월 17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호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0판-2면-15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ㅌ-01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