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원(李達元)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19537
  • 전몰일자 : 19530706

공훈사항

이달원 하사는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5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사단 공병대대는 주로 방어시에는 장애물을 설치하고, 공격시에는 장애물을 개척하여 보병연대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달원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6월 중순, 제6사단은 교암산-봉화산을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전방에는 전초기지인 575고지를 운용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중공군은 5월 31일과 6월 14일에 두 차례에 걸쳐 전초기지인 575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으나, 제2연대 장병들은 매번 역습으로 되찾았다. 이후 575고지는 6월 19일에 수도사단에 넘겼다.
제6사단은 10월 21일부로 전투지경선 조정으로 백암산 전방의 552고지-봉화산-교암산을 연하여 방어정면을 담당했다. 이후 1953년 5월까지 3개 연대를 교대하면서 전방 및 예비 임무를 수행하고, 아울러 진지 강화와 야간 매복, 주간 수색작전에 중점을 두었다. 이 시기에 이달원 하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주요 통로에 철조망 및 지뢰지대를 설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좌측의 국군 제8사단 지역이 6월 10일부터 중공군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하자, 제2연대는 6월 13일부로 제8사단에 배속되어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지원하고 6월 16일 복귀했다. 당시 이달원 하사가 지휘하는 수색중대는 제2연대에 배속되어 함께 출동했다가 장애물 설치를 지원하여 작전에 기여하고 사단으로 복귀했다. 이후 중공군의 공격 징후가 농후해지자, 공병중대는 장애물을 더 조밀하게 설치하여 대비했다. 공병중대는 7월 6일에 철조망 지대를 설치하던 중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려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원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8판-6면–19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ㅈ-10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