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원(李達源)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달원 순경은 1923년 2월 24일 충남 서산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서울시경 용산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서울에서 전사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순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10월 20일 치안국에 비상경비총사령부를 설치했다. 1949년 8월 1일 비상시 경비업무를 능률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각 도(道) 경찰국에도 비상경비사령부를 두도록 했다.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치안국장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행정·정보·작전·통신의 4개 참모부서를 두었으며, 각 도(道) 비상경비사령부도 이와 같은 전투편제로 전환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이 되자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했다. 경찰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경찰간부를 중심으로 4월 20일 제8전투경찰대대와 제9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영월과 춘천에 배치하는 등 전·후방의 치안 확보에 주력했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갑호비상근무령)을 내려 북한의 군사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했다. 서울을 목표로 한 적의 주공 제1군단은 연천-운천-의정부에 이르는 축선과 개성에서 문산으로 이어지는 접근로에 전투력을 집중했다. 국군은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제8·제18연대와 독립 기갑연대가 서울에 배치되어 있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고, 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대처하며, 해당 지역 군부대와 협조하라는 지시를 하달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5일 오전 10시경 적기가 김포와 여의도 기지를 정찰한 후 정오경에는 YAK전투기 4대가 서울 상공에 출현해서 용산역, 서울공작창, 통신소, 교통부 육운국 청사 등 여러 곳에 기총소사를 가하고 폭탄을 투하했다. 이 당시 이 순경은 치안유지활동을 하던 중 적 YAK전투기에서 투하된 폭탄에 의해 안타깝게도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원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50판-2면-2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ㄷ-01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