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우(李達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30031
  • 전몰일자 : 19510127

공훈사항

이달우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 부남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9년 말경부터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지자 조국을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4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육군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했다. 6월 25일 수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한 데 이어 오후에는 제18연대(-1)마저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해 가평지구로 투입했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교도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시켜 창동 지역에 배치했다.
이달우 일병은 육본 교도연대에 편성되어 창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국군은 7월 한 달 동안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다, 8월 1일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 이 일병은 낙동강방어선의 신녕과 영천 전투에 투입되어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함으로써 조국의 위기를 구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후방지역에서의 공비토벌과 보급로 확보, 포로경비 등을 위해 1950년 11월부터 1951년 4월까지 15개 경비대대를 창설했는데, 이 중 제2경비대대는 1950년 11월 24일 경남 밀양에서 제5유격대를 개칭해서 창설되었다. 이때 이 일병은 동 대대로 전속되었다. 대대는 창설 후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지역에서 북상하는 북한군 패잔병들을 소탕하는 등 군단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했다. 이달우 일병은 1951년 1월 27일 삼척 일대에서 수색작전 중에 적과 조우하여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5-ㄲ-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