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우(李達雨)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위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16

공훈사항

이달우 경위는 1929년 12월 23일 경북 영천군 신녕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장수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장수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장수경찰은 주요 시설 경비와 장수-진안, 장수-무주, 장수-함양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오열 색출 임무수행에 들어갔다.
7월 20일 전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전북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남원시 운봉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7월 23일 북한군이 광주로 진격하자 아군 군경부대는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후퇴했으며, 장수경찰은 함양-의령을 거쳐 함안으로 기동했다. 비상경비총사령부는 7월 31일 진주에서 경남경찰, 전남·전북경찰 혼성병력 4천여 명으로 전투부대를 재편성했고, 경찰부대는 미 제25사단 및 한국 해병대와 합동작전을 전개했다.
7월 31일 진주가 함락되자 군경부대는 마산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6사단에 대비하기 위해 경남·전남·전북의 경찰병력 4,000명으로 전투편성을 한 다음, 지휘소를 함안군 군북면에 두고 미 제25사단, 한국 해병대와 합동으로 적과 대치하게 되었다. 통영 원문고개에서 방어에 임하고 있던 경남경찰이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인해 8월 14일 통영을 거쳐 거제도로 철수하게 되자 마산과 부산이 적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8월부터 9월까지 이 경위가 소속된 경찰부대는 고성·창원·함안·진동에서 북한군 제6·7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하면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과 유엔군이 총반격을 개시함에 따라 장수경찰도 경찰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장수경찰은 9월 17일 함안을 출발하여 10월 초 장수경찰서를 수복한 후 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하며 잔적소탕작전을 전개했다. 12월 16일 이 경위는 장수 읍내에 출현한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우 경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ㄹ-06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