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용(李達龍)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75093
  • 전몰일자 : 19521024

공훈사항

이달용 하사는 1926년 9월 8일 경상북도 영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2월 29일 제주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선 상황은 1951년 후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이 1952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정교해지고, 그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더욱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공산군 측에 압력을 가하고 미래의 휴전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더 많은 피를 흘리는 고지쟁탈전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이달용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7월 8일 새벽 1시에 621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면서 일시 고지 정상을 장악하였으나, 고지 서북쪽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고 물러났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말부터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 강화에 주력하였다. 그러던 중 8월 5일 북한군은 소강상태를 깨고 수도고지로 공격을 재개하였다. 그와 연대는 2차례에 걸쳐 진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수도고지의 전초소대가 북한군의 포격에 견디지 못하여 주진지인 663고지로 철수하고 말았다. 북한군은 그 기세를 몰아 663고지 일대로 압박해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6일부터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수차례 반복되었으며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그 뒤 8월 중순에 접어들어서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또다시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이 하사를 비롯한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으나 수도고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10월 6일부터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은 수류탄이 무수히 투척되고 소화기탄과 포탄이 난무하는 격렬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이달용 하사와 연대병력은 포탄이 빗발치며 낙하하는데도 미친 듯이 참호전을 전개하며 어떤 희생에도 고지를 방어하려 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사기로에서도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달용 하사는 1952년 10월 24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용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7338 육)을 추서하고 유해(41묘역-2판-1564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7-ㅋ-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