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용(李達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00989
  • 전몰일자 : 19530630

공훈사항

이달용 일등중사는 1932년 9월 26일 경기도 포천군 화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등중사는 1951년 3월 22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 중이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인제 일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연대는 평창,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4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 후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는 10월 2일까지 백병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연대는 1953년 4월 2일 시작된 사단의 전초인 689고지에 대한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12일까지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사단은 6월 15일 제2군단에 다시 배속되어 화천군 백암산 전방 북한강과 금성천 분기점 상의 529고지(관망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공군 제180·제201사단은 6월 25일 공격을 개시했고(6월 공세), 사단은 7월 3일까지 7차에 걸쳐 역습을 감행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치렀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진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6월 30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용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6219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9-ㅅ-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