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용(李達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737367
  • 전몰일자 : 19510901

공훈사항

이달용 이등중사는 강원도 울진군 평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 및 유엔군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출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했던 1950년 11월 말, 의정부의 육군 제2사단으로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달용 이등중사가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2월 말, 제2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대규모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받아 방어진지에서 하룻밤도 버티지 못하고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1월 7일에 충주에 도착하여 충주-단양 간 병참선경계를 했고, 2월 13일 안동 일대로 이동하여 후방교란을 일삼던 북한군 패잔병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제2사단은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당시 군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를 저지하고 38도선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5월 10일을 전후하여 중공군의 공격징후들이 포착되자 방어로 전환했다. 이후 중공군의 5월 공세가 5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용문산-대관령-강릉을 연하는 선에서 저지시키고 5월 20일을 기해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달용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5월 24일부터 본격적인 반격작전을 감행하여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제압하며 진격했다. 그리고 6월 12일에는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캔자스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제2사단은 8월 2일에 공세적인 행동으로서 방어지역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공격했다. 이달용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서 강력한 항공 및 포병화력 지원을 받아 보전 협동으로 공격을 감행하여 탈취했다. 이후 중공군의 필사적인 역습으로 빼앗기는 등 피아간에 벌어진 공방전은 8월 8일까지 계속되었으나 745고지를 탈취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제2사단은 9월 1일에 745고지에 대해 공격했다. 이달용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 745고지 우측의 735고지를 공격하였다. 이러한 공격을 9월 3일까지 계속하여 745고지와 735고지를 탈취했다. 그는 분대장으로서 9월 1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용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9-ㄷ-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