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오(李達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664
  • 전몰일자 : 19501003

공훈사항

이달오 일병은 경상북도 칠곡군 대봉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격렬한 공세를 힘겹게 저지하던 시기인 1950년 9월 2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달오 일병은 가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무렵 가산을 점령한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이 다부동 남쪽 도로룰 차단하고 대구산 도로를 감제하는 570고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산 및 570고지 일대에는 유엔 전폭기가 수시로 출격하여 폭격하였으므로 북한군은 적극적인 공세행동을 하지 못하였다.
9월 10일 북한군 제1사단이 가산 일대에서 공격을 재개하여 일부 병력을 도덕산(660m)일대로 남진시키고 일부 병력을 팔공산 일대로 진출시키고 있었다. 이달오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9월 14일에는 대구 북쪽의 약 10km 지점에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가산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그가 방어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수차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이달오 일병을 포함한 연대병력은 추격 작전간 미 제1군단 예비로써 낙동강을 도하하여 선산-상주로 전진하라는 군단 명에 의하여 9월 25일 낙동리에서 도하를 완료하고 추격 작전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미 제1기병사단을 후속하여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적 제2, 제3, 제4, 제7, 제9사단 등 여러 사단들의 패잔병을 추격하여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계속해서 증평, 괴산, 진천, 음성 등에서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이달오 일병과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달오 일병은 1950년 10월 3일 고랑포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0판-3면-03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2-ㄷ-01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