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영(李達永)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39435
  • 전몰일자 : 19520704

공훈사항

이달영 하사는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 문제로 휴전협상이 지루하게 진행되던 1952년 6월 6일 제주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달영 하사가 전선에 투입될 당시 사단은 1952년 6월 16일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690고지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1Km의 능선), 수도고지(663고지 북 500m, 610고지)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이때 사단은 여호고개-여문리를 경계로 좌전방에 1연대, 우전방에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하여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달영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4일 새벽 1시에 621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날은 가랑비로 인해 기도비닉 유지에 유리한 반면 적정판단의 어려움이 있었다. 북한군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면서 일시 고지 정상을 장악하였으나, 고지 서북쪽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수차례 반복하였으며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전투가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전투 현장에는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 임무를 수행했던 이 하사는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포화에 의한 극심한 피해와 병력의 열세로 수도고지를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이달영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1952년 7월 4일 수도고지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영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7560 육)을 추서하고 위패(23판-14면-859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ㅊ-01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