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연(李達淵)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0387405
  • 전몰일자 : 19520924

공훈사항

이달연 이등상사는 1935년 6월 10일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출생하였다. 이 이등상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이등상사는 1951년 1월 9일에 입대 후 제주도에 있는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유엔군과 북한군은 1951년 11월 27일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이 1952년 전반기까지 지속되었다.
좌전방에 배치된 연대는 1952년 4월 19일 사단 정면에 위치하여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던 300고지를 기습했으며,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고 적병 일부를 사살 후 철수했다. 이후 제9사단은 김화지구에서 전초 쟁탈전과 포로획득전,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유엔군은 1952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고 제9사단은 4월 중순 강원 고성군 진부리 일대까지 진격 후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점령했다.
중공군은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에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9사단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철원 서북방의 백마고지와 금화지구에서 중공군과 대치했다.
대치와 동시에 제9사단은 주저항선을 보강하면서 백마고지, 평강 진출로 상에 있는 신화산(343고지)과 그 주변 고지 일대에서 소규모 진지쟁탈전과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하지만 이 이등상사는 1952년 9월 24일 수색정찰 도중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연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ㅍ-02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