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수(李達守)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908942
  • 전몰일자 : 19510425

공훈사항

이달수 하사는 경상남도 부산시(現 부산광역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전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2월경 서귀포에 위치한 제9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제주도에서 일어난 소요사태를 진압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여 제5사단이 1950년 10월 8일 재창설되면서, 이달수 하사는 제제5사단 제27연대로 재배치되었다. 그 당시 제5사단은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작전이 한창 진행 중에 영남지역에서 잔적을 소탕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아군이 38도선으로 후퇴하면서 사단은 12월 5일경 춘천 북방의 전선에 투입되어 아군의 철수를 엄호했다. 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이달수 하사가 소속된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 제35연대는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 그리고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에 배치되어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2월 9일 섬강 남쪽으로 진출하면서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횡성 일대 포동리를 점령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 후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했으며, 점령하여야 할 원주-평창선보다 남쪽으로 계속 철수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부대를 정비하면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었다. 사단은 3월 3일에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월 7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지역의 태기산(1,261고지)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래서 사단은 3월 14일에는 적의 최후 거점인 태기산을 점령하고, 다음날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을 잇는 선으로 진출하면서 최종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 후 사단은 4월 10일 공격을 개시하여 19일에 목표인 인제를 점령하고 그 북방 봉화봉과 월하리 일대로 진출하면서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제27연대는 사단 예비로 후방지역 경계를 담당했다. 이달수 하사는 4월 25일 인제 지역에서 분대원을 통제하며 전방 연대 철수작전을 지원하던 중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수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30묘역-판-2590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ㄱ-07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