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수(李達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22613
  • 전몰일자 : 19520703

공훈사항

이달수 하사는 경상북도 금릉군 아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1951년 2월 중순 제주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전사자 명부에는 소속이 제6연대로 되어 기록되어 있으나, 동 연대는 전쟁 발발 이전에 해체되어 제22연대로 개칭되었으므로 오기로 추정하여 제22연대로 조정함)
이달수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에 밀려 1·4후퇴를 단행하여 37도선에서 전력을 가다듬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평창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후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을 지켜냈다. 이어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면서 방태산으로 후퇴하여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1952년에 접어들어 전 전선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잡고 아군 전초진지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하였고, 제3사단은 적의 주공 축선을 억제하게 될 요충지역으로 제22연대 전초진지인 피의고지(748m)와 독수리고지(572m)를 선정하고 이곳에 대한 방어 전열을 보강했다. 사단의 방어지역은 북한강 상류지역의 산악지대이고, 아군 주저항선상의 949고지는 동 지역의 최고봉이었으며 동서로 뻗은 능선으로 방어에 유리하였다. 949고지로부터 북으로 T자형으로 뻗은 능선중앙과 서측 전초진지인 독수리고지 및 피의고지는 각각 적으로부터 감제당하고 있어 아군기동에 다소 제한을 주고 있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달수 하사는 1952년 7월 3일 949고지 일대에서 수색 정찰 활동을 하던 중 정찰대의 기습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8판-4면-19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7-ㄹ-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