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수(이달수)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714774
  • 전몰일자 : 19510211

공훈사항

이달수 하사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소백산맥 선으로 후퇴하자 조국을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하사는 7월 중순 제1교육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8월 20일 제8연대는 제3·5연대와 함께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연대는 낙동강방어선의 신녕지구전투, 영천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반격작전의 여건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하여 20일 북한군 제17·32사단의 저항을 물리치고 평양을 탈환했다. 이로써 연대 장병들은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원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연대는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격퇴했다. 연대는 11월 22일 묘향산을 공격했으나, 중공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1951년 1월 중순경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공격을 개시하여 만경대산, 785고지, 계족산을 차례로 점령하고 적의 퇴로를 차단한 후, 24일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적이 물러남에 따라 1월 25일 사단은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 북방으로 진출했고, 2월 초순까지 횡성 동북방의 창동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2월 11일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고, 횡성 일대에 배치된 국군 제8사단은 적의 집중에 밀려 원주 후방으로 철수했다. 이에 돌파구 측방의 창동리에 배치되었던 사단은 측방이 노출되면서 20km 정도 후방으로 철수했으나, 적은 틈을 주지 않고 추격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2월 11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14면-859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7-ㅅ-10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