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수(李達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6769
  • 전몰일자 : 19510302

공훈사항

이달수 일병은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9월 20일에 카투사(KATUSA)로 분류되어 미 제3사단으로 배치되었다.
이달수 일병은 미 제3사단에 배치된 카투사 병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부대에 합류했다. 당시 미 제3사단은 8월 20일에 일본에 도착하여 한국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부족한 병력은 미 본토에서 일부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카투사 병력으로 충원하고 있었다. 전투준비를 마친 미 제3사단은 11월 5일에 일본을 출항하여 17일에 원산으로 상륙을 완료했다. 사단의 최초 임무는 원산의 항만과 비행장을 방호하며 잔류 게릴라를 소탕하는 것이었다. 이후 미 해병 제1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11월 20일에 원산에서 함흥으로 이동했다. 미 해병 제1사단은 11월 27일에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에 포위된 채 함흥으로 철수를 해야 했고, 함흥-원산 간 도로는 차단된 상황이 발생했다.
이달수 일병이 소속된 미 제3사단은 흥남-함흥 외곽선을 점령하여 미 해병 제1사단의 철수를 엄호하고 항만을 보호해야 했다. 사단은 흥남철수작전 시에 외곽방어선을 점령하여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아군부대의 철수를 엄호했다. 흥남철수작전은 12월 15일 그동안 가장 피해가 컸던 미 해병 제1사단부터 국군 수도사단·미 제7사단 순으로 철수했고, 사단은 가장 마지막으로 흥남항에서 철수하여 12월 24일에 부산항에 도착했다. 사단은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에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1951년 1월 7일에 평택 일대로 투입되었다.
이후 미 제3사단은 1월 25일에 개시된 선더볼트작전 시에 남한산성 방향으로 공격하여 2월 10일에 한강 이남 지역을 확보했다. 그리고 2월 12일부터 중공군의 2월 공세가 시작되자, 사단은 남한산 방어진지를 고수했다. 사단은 재반격작전 준비를 하여 2월 21일부터 반격을 했다. 이달수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선두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하며 전진했다. 그는 3월 2일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0판-3면-09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0-ㅋ-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