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세(이달세)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104788
  • 전몰일자 : 19500824

공훈사항

이달세 하사는 출생 일시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계급과 군번, 전사 일자 그리고 소속부대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18일,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가 1950년 4월 19일에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될 때, 그는 사단 직할부대인 병기대에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병기소대는 홍천 축선을 담당하고 있던 제2연대를 직접지원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신속히 어론리 북쪽의 방어진지에 배치되었다. 장병들은 북한군 전차에 대항하여 특공조를 조직해서 파괴하고, 때로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행동으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이달세 하사가 소속된 병기소대는 제2연대에 전투에 필요한 총기 및 장비 정비를 지원했다. 이후 제2연대와 함께 6월 29일 홍천에서 철수하여 지연전을 실시하며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이후 문경-함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조봉, 어룡산 등지에서 치열한 교전을 전개하면서 7월 31일까지 지연전을 전개했다. 그리고 제2연대는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연하는 능선의 낙동강 선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후 8월 12일 22시경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하여 위천 북방의 국통산∼청노동을 연결하는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했다.
제2연대는 8월 18일 새벽 3시 무렵 적의 공격을 받고 국통산과 324고지, 169고지 일대에서 13시간 동안 치열한 격전을 전개했다. 이처럼 국통산과 324고지, 169고지 일대에서 고지쟁탈전이 연일 계속되었지만, 장병들은 공세적인 방어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그러나 연대는 8월 24일에 적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아 방어선이 돌파되는 위기가 있었다. 당시 이달세 하사가 소속된 병기소대는 총기 및 장비 지원뿐만 아니라 직접 전투병으로서 적에 맞서 싸웠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적의 공격에 맞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세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59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ㅅ-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